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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호 여사 인터뷰 “남과 북, 더 자주 만나야…미투운동, 놀라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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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기념사업회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765회   작성일Date 20-09-23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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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 정치부 데스크

    ‘한반도’에서 ‘미투’까지
    문 대통령·김여정 만남 두고 “좋아요, 아주 좋아요” 웃음꽃
    미투운동 파문엔 목소리 격앙 “여성들을 인격적으로 대해야”

    이희호 여사가 지난 1일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며 밝게 웃고 있다. 정지윤 기자

    이희호 여사가 지난 1일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며 밝게 웃고 있다. 정지윤 기자

    이희호 여사(96)가 휠체어에 앉아 서울 동교동 자택 접견실로 들어왔다. 봄날의 보라색 블라우스가 단아했다. 고난과 평화를 상징하는 보라색은 이 여사의 평생과 함께했다. 1976년 3·1구국운동 사건 때도 그랬고, 크고 작은 역사의 현장에 설 때마다 그는 보라색 옷을 자주 입었다. “유난히 보라색을 좋아하셨잖아요. 보라색 스카프도 자주 매셨고요.” 10년 전 그의 자서전(<동행>)을 쓴 유시춘 작가도 동석해 먼저 안부를 물었다. 이 여사는 “네네. 정월 초하룻날에도 입었어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모두 긴장했었다. 지난 1일 오후 3시, 약속을 잡고 동교동을 찾을 때까지도 다들 말을 아꼈다. 건강이 괜찮을지, 인터뷰가 가능할지…. 걱정했던 맘은 이 여사가 일행들의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며 “고마워요” “반가워요” 인사를 건네면서 풀어졌다. 유 작가는 이 여사 곁에 바짝 붙어 앉았다. 기자의 질문을 이 여사 귀에 대고 큰 소리로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인터뷰는 평창 올림픽과 막 특사단이 오가기 시작한 남북 얘기로 시작됐다.

    - 평창 올림픽 때 북에서 많은 사람들이 왔잖아요. 그 사람들을 보니 어떠셨나요.

    “직접 못 만났어요. 그래도 아주 기분 좋아요.”(배석한 이 여사 3남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은 “매일 TV로 방송을 보셨다”고 전했다.)

    -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 여동생도 만나고 대화도 많이 했잖아요.

    “좋아요. 아주 좋아요.”

    - 여사님이 평창에 직접 가셨으면 어땠을까요.

    “(활짝 웃으며) 좋았겠죠. 초청장도 받았는데….”

    김 상임의장은 “올림픽 개회식 리셉션에 이 여사도 초청받았지만 평창의 날씨도 춥고 건강 문제로 참석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안 그래도 그날 리셉션장에 도착하니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남측 원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앉아서 대화하고 있었는데, 나를 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어머니도 오셨냐’고 물었다. 헤어질 땐 김 위원장이 ‘돌아가신 어른 유업 잘 계승하기 바란다’고 부탁했다”고 전했다.

    이 여사는 아들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이 여사는 2000년 6·15 방북 때 평양에서 김영남 위원장을 본 기억을 묻자 고개를 끄덕였다. 방북 당시 묘향산도 둘러보고, 이화여고에서 수학을 가르친 스승 김지한 교사와 상봉하기도 했다. 혹시 TV를 보다가 더 기억나는 사람이 있었는지 물었다.

    “나를 안내했던 여자가 계속 나왔어요.”

    - 아, 그래요? 누구였나요.

    “나를 안내하던 여자가 이번에도 있었어요. 내가 가지는 못했지만 TV에서 보니까 그 여자가 계속 안내를 하고 있었어요.”

    김 상임의장은 “(김여정을 수행하던) 김성혜를 말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6년 전 김정일 국방위원장 조문을 갔을 때 김성혜가 어머니를 수행했다”고 덧붙였다.

    - 만났으면 손잡아주시고 싶었겠어요.

    “네. 손잡고 인사해야죠.”

    지난 1일 서울 동교동 자택 접견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는 이희호 여사의 왼손 약지에 반지가 끼여 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지난 1일 서울 동교동 자택 접견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는 이희호 여사의 왼손 약지에 반지가 끼여 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 꼭 다시 보고 싶은 사람이나 가보고 싶은 곳 있으세요. 김대중 대통령과 같이 평양에 갔을 때요. 많은 곳에 가셨잖아요.

    “평양에서 냉면을 먹었는데 특별히 맛있지는 않았어요. 2층 집(옥류관)이었는데 꽤 컸어요(큰 웃음).”

    - 맛이 없었나요. 평양냉면이 원래 유명하잖아요.

    “별로 맛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맛이 있었다고 할 수는 없었어요. 하하하.”

    유 작가는 “이 여사가 평소 평양 옥류관 냉면이 자극적인 맛에 길들어 있는 남측 사람들로선 다소 싱거울 수 있겠다고 하셨다”며 “대신 2015년 8월 방북 마지막 날 고별만찬에 나왔던 배속김치는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았다고 했다. 배의 속을 파내고 그 안에 김치를 앉혔는데 맛이 일품이었다며 가끔 생각난다고 기억했다”고 거들었다.

    평양냉면과 배속김치 이야기가 나오자 이 여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김 상임의장은 “6·15 때 어머니는 장상 이대 총장과 함께 맞벌이 부부를 위해 설립된 평양 창광유치원을 방문했고 1981년 개원한 세계 최대 규모 여성전문 병원인 평양산원을 찾아 초음파 영상진단기를 증정했다”고 소개했다.

    이 여사는 묘향산 이야기를 자주 꺼냈다. 2015년 북한 어린이들에게 주려고 직접 뜬 많은 장갑들을 가지고 ‘사랑의 이사장’ 자격으로 방북했을 때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3주기 때 조화를 보내준 데 대한 답례로 북측이 평양 방문을 초청해 추진된 일정이다.

    “묘향산에 가고 싶어요. 묘향산에 갔더니 외국에서 받은 좋은 선물이 많이 있었어요.”(김 상임의장은 “묘향산 국제친선박람관이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세계 정상들로부터 받은 선물을 전시한 곳이다. 그때 한국 불교 5대 사찰인 보현사도 봤다”고 말했다)

    - 묘향산이 가장 그리우신가요.

    “네. 묘향산에 가서 숙박(묘향산 호텔)도 하고 그랬어요.”

    - 또 기억나는 거 있으신지요.

    “여러 가지 있죠. 하나만 꼬집어서 말할 수는 없어요.”

    - 남과 북이 다시 만나잖아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동안 자주 못 만났어요. 가까운 데 있으면서도 오질 않으니. 이제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 여사는 6·15 기념사진에 눈을 맞추면서 남북이 만나는 것을 “좋은 일”이라고 했다. 그는 10년 전에 쓴 자서전 <동행>에서는 직접 6·15 공동선언 비화를 소개한 적도 있다. 4시간 가까이 지속된 회담 후 두 정상이 두 팔을 번쩍 함께 들어올린 모습이었다. 유일한 연출 장면이었다. 현장을 놓친 사진기자들이 난감한 표정으로 연출을 요청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흔쾌히 받아들이며 김 전 대통령에게 ‘좋은 날인데 우리 배우 한번 하십시다’라고 권했다. 역사적 장면은 그렇게 성사됐다.

    미투(#MeToo) 운동이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여성은 마지막 식민지’라는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오랜 시간 권력과 위계의 ‘폭력’에 억눌려 있던 목소리가 ‘여성 권리장전’처럼 거대한 파도로 몰아치고 있다. 이 여사는 한국 여성운동 1세대 리더다. 따뜻하고 유복했던 자신의 삶이 고통받는 여성들에겐 빚이었다고 여겼다. 1954년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 것도 농촌여성교육기관을 설립하기 위한 유학길이었다. “평생 여성운동을 하고 싶었다”던 이 여사는 수많은 여성들의 아픔이 뒤엉킨 미투 운동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 여사님, 미투 운동 아시죠. 미투 운동요.

    “놀랐어요. 정말 놀랐어요. 그런 일이 그동안 어떻게 벌어지고 있었는지 정말 놀랐어요.”

    이 여사의 목소리가 다소 커졌다. 김 상임의장은 “어머니가 TV로 미투 운동 보도를 볼 때마다 놀라면서도 가슴 아파했다”고 했다. 유 작가는 “1985년 권인숙씨 성고문 사건 이후 이 여사는 ‘우리 사회가 반드시 넘어야 할 장애물은 군사문화와 결합된 가부장제 문화’라며 분노했다”고 보탰다.

    - 왜 여성들이 이런 고통을 겪어야 했을까요.

    “남성들은 여성들을 인격적으로 대해야 해요. 어떻게 여성들을 그렇게 함부로 취급할 수 있는지 너무 화가 나요.”(김 상임의장은 다시 “어머니는 성폭력 가해자 이름이 나올 때마다 알 만한 지도층 인사들이라는 점에서 큰 충격을 받으셨다”고 부연했다.)

    - 여성들이 정말 힘들고 어렵게 용기내고 있어요. 따뜻한 격려 말씀도 주시고 싶지요.

    “용기 있게 나서는 거 보면 좋아요. 대견하고 고마워요. 우리 땐 생각도 못했어요. 더 단호하고 당당하게 나갔으면 좋겠어요.”

    이 여사는 자서전 <동행>에서 여학교에서 비교적 민주적인 교육을 받다가 서울대에 입학한 뒤에야 남성들의 뿌리 깊은 가부장제, 남존여비 의식과 맞부딪쳤다고 했다. 스스로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뒤 모임이 있을 때면 여학생들 자리에 술 대신 사이다를 놓고 남학생들과 같이 건배를 했다. 김 상임의장은 “어머니는 7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에 너무 가슴 아파하신다”고도 했다.

    - 한명숙 전 총리가 첫 여성부 장관이었잖아요. 만약 이 여사님이 장관이라면 뭘 하고 싶으세요.

    “남녀가 동등한 권리를 유지할 수 있는 일, 그런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시작한 지 40분 정도 흘렀다. 이 여사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스쳤다. 한마디라도 더 듣고 싶었다.

    - 지금 문재인 정부잖아요.

    “잘하고 있어요.”

    - 어떤 걸 잘하고 있나요.

    “모든 것을 다하고 있잖아요. 잘해요.”

    - 몇 점을 주시겠어요.

    “96점.”

    - 많이 주셨네요. 그런데 4점은 왜 빼셨어요.

    “100점은 못 주겠어요. 하하하.”

    이 여사는 앞쪽 테이블에 놓여 있던 자서전 <동행>의 표지 사진을 보고 웃었다. 김 전 대통령이 사형수에서 생환한 뒤 1983년 미국으로 떠나 망명 생활을 하던 버지니아 알렉산드리아 한 아파트 부엌에서 마주선 부부가 웃으며 커피를 마시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 여기 알아요. 미국에서 살 때야. 미국 망명 때네.” 길지 않았지만 50분 남짓한 인터뷰는 이 여사의 아흔여섯해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감옥-연금-망명으로 가득 찼지만 꽁꽁 언 얼음 밑에서라도 쉼 없이 물줄기로 흐른 삶이었다. 미처 못한 말은 내년 이맘때쯤 두 겹의 사연으로 다시 들려주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3남 김홍걸 “어머니, TV 보며 세상 돌아가는 것 챙겨”

    이희호 여사가 지난 1일 경향신문 이기수 편집국장(왼쪽)이 선물한 2010년 6·15 10주년 기념식 당시 사진을 유시춘 작가(가운데)와 함께 보며 웃고 있다.  정지윤 기자

    이희호 여사가 지난 1일 경향신문 이기수 편집국장(왼쪽)이 선물한 2010년 6·15 10주년 기념식 당시 사진을 유시춘 작가(가운데)와 함께 보며 웃고 있다. 정지윤 기자


    이희호 여사는 지난 1일 서울 동교동 자택 접견실에서 경향신문과 만나 현안에 대한 입장을 소신 있게 밝혔다. 고령(96세)이라 큰 소리로 질문했던 점을 제외하면 인터뷰는 무리 없이 진행됐다. 이 여사 자서전 출간을 도왔던 유시춘 작가가 곁에서 기자의 질문을 대신 전했고, 김홍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55)이 배석해 이 여사 답변을 도왔다. 김 상임의장은 “어머니가 신문과 책은 보기 힘들지만 TV 방송은 빠뜨리지 않고 시청한다”고 전했다.

    이 여사는 최근 남북이 가까워지고 있는 상황을 환영했다. “좋다” “자주 만나야 한다”고 표현했다. 2000년 6·15 공동선언 때와 2015년 8월 방북 과정의 기억이 혼재됐지만 비교적 당시 정황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인터뷰 전 경향신문 이기수 편집국장이 2010년 6·15 공동선언 10주년 기념식 때 기념사를 하러 단상에 올라가는 이 여사 사진을 선물로 건네자 “멋지네요”라며 인사하기도 했다.

    이 여사는 미투 운동 관련 질문엔 여성운동가로서 후배 여성들에게 당당한 대응을 주문했다. “충격을 받았다”면서 목소리도 커졌고 하고 싶은 말을 이어가며 간간이 손을 들기도 했다. 인터뷰 중반부터는 농담도 하며 편한 분위기를 주도했다.

    접견실엔 김대중 전 대통령 사진이 빼곡하게 걸려 있었다. 당초 대면 인터뷰와 김 상임의장에게 미리 건넨 서면 인터뷰를 종합하려 했지만, 서면 답변서는 발언 배경 등만참고하고 인터뷰 기사는 이 여사 발언을 최대한 옮겼다.

    이 여사 경호는 지난달 24일 종료됐다. 관련 법은 전직 대통령과 배우자 경호를 ‘퇴임 후 10년 5년 추가’로 규정하고 있다. 경호대상을 안정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면서 ‘경호제공 기간을 5년 연장’하는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돼 운영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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