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식장에서 선서하고 있다. | |
ⓒ 자료사진 |
종로에서 40년을 살다
현재 나는 강원도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1961년부터 2004년까지 40여 년(군복무기간 제외)을 서울에서 살았다. 그 기간 대부분 종로구에서 살았다. 종로구 가회동, 계동, 원서동, 연지동, 무악동, 평동, 사직동, 누하동 등지에서 주로 사글세 또는 하숙, 입주 가정교사, 친구네 집 더부살이 등으로 살다가 교사가 된 이후 종로구 구기동 산동네에다 비로소 문패를 달았다. 나는 그곳 한 집에서만 꼬박 32년을 살다가 강원도 횡성 안흥 산골로 내려왔다.
서울 종로구 가회동, 계동, 원서동, 사직동, 누하동 등지는 골목골목 발로 뛰면서 아침저녁으로 신문배달을 했다. 그래서 지금도 눈 감으면 그 골목들과 번지수도 손금 보듯 아련하게 떠오른다. 나의 모교(중동고)도 종로구였고, 이후 모교에서 한때 교사생활도 했다. 그래서 종로구 일대는 뒷골목까지도 거의 눈에 선하다.
흔히들 종로를 '정치 1번지'라고 부른다. 그 까닭은 청와대도, 지난날 중앙청(정부종합청사)도, 종로구에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종로구 지역 출신 정치인 중에는 훗날 대통령도, 국무총리도, 여야 당수도 되는 이가 많았다. 그런 연유 때문에 '정치 1번지'라는 별칭이 붙은 것 같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은 정치적 동물이다"고 말한 바, 사람은 정치를 떠나 살 수 없나 보다. 오늘날 주가도, 물가도, 부동산 값도 정치인의 말 한 마디에 춤춘다. 그래서 비정치인이라 할지라도 정치를 외면하면서 살 순 없다.
특히 4년마다 한 번씩 벌어지는 지역구 국회의원 총선은 일반 유권자들에게 큰 볼거리요, 관심을 집중시킨다. 이는 유권자로서 자기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면서 정치인으로부터 '대접'을 받는 때이기도 하다. 사실 구경거리 가운데는 '싸움'이 가장 재밌다. 대표적인 게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의 합동유세장으로 말싸움의 극치를 이룬다.
1996년, 총선, 종로구... 노무현을 만나다
▲ 1996년 15대 총선에서 서울 종로구에 출마했던 노무현 민주당 후보의 벽보. | |
ⓒ 선거정보도서관 |
1996년 4월 11일에 실시된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때 종로구는 전국의 최대 관심지역으로 눈길을 모았다. '정치 1번지'라는 지역구답게 쟁쟁한 정치인들이 입후보했다.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의 이명박 후보, 새정치국민회의의 이종찬 후보, 통합민주당의 노무현 후보, 그밖에 자민련 김을동 후보 외 무소속 및 군소정당 후보 3인 등 모두 7명이었다.
그때 나는 종로구 지역의 한 유권자로 선거일을 앞둔 주말 오후에 일부러 종로5가 효제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후보자 합동유세장에 찾아갔다. 그리하여 두어 시간 그들의 열띤 말의 공방전을 즐겼다.
그때 7명의 후보 가운데 연설 순서 추첨 결과 가장 먼저 단상에 오른 이는 신한국당의 이명박 후보였다. 그는 '종로 발전의 적임자'라는 자평과 함께 장밋빛 공약을 잔뜩 늘어놓고 하단했다. 그러자 운동장을 가득 메운 3000여 청중 중 대략 1000명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대부분 동원된 청중처럼 보였다.
이어 새정치국민회의 이종찬 후보가 연단에 올랐다. 그는 '종로토박이를 뽑아달라'면서 '이명박 후보가 선거판을 흐리는 관권선거를 한다'고 맹비난했다. 그동안 늘 여당 후보로 4선을 한 이종찬 후보가 야당 후보가 돼 여당 후보를 공격하는 걸 보면서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게 인생'이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이 후보의 연설이 끝나자 500여 청중이 빠져나갔다.
이어 자민련 김을동 후보가 연단에 올랐다. 그는 '장군의 손녀' '투사의 딸'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포문을 열었다.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전투 이야기와 왕년의 종로 뒷골목 주먹왕 김두한 이야기로 청중을 즐겁게 했다.
그날 노무현 후보는 여섯 번째로 등단했다. 그때는 관중이 거의 빠져나간 뒤였다. 유세장은 파장 터와 같았다. 그는 이미 연설을 끝내고 자리를 뜬 이명박 후보와 이종찬 후보를 두루 싸잡아 특유의 카운터펀치를 날렸다. 하지만 당사자들도, 청중들도 대부분 자리를 떠난 뒤였다. 허공에 화살을 마구 쏟는 격이었다.
노무현 후보는 유세를 마친 뒤 홀로 쓸쓸히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 쪽으로 나갔다. 그는 상심한 마음을 달래려는 듯,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인 뒤 아주 맛있게 태우면서 퇴장하다가 나와 마주쳤다.
후보에게 유권자는 '왕' 아닌가. 그는 입에 문 담배를 얼른 손아귀에 감춘 뒤 내게 아주 공손히 인사했다.
"노무현입니다."
"..."
나는 말없이 엉거주춤 그에게 목례로 답했다. 그런 뒤 나도 그의 뒤를 따라 유세장을 벗어났다. 그때 그의 표정은 대단히 씁쓸해 보였다. 결국 그는 낙선했다.
나는 지금도 그날 그가 허망한 표정으로 돌아서는 뒷모습이 마치 엊그제 본듯 선명히 떠오른다.
고3 때 단짝 친구
▲ 염동연 의원의 고3때 모습. | |
ⓒ 박도 |
우리나라는 국토가 좁다. 그 때문일까. 한 사람만 건너면 서로 다 알고 통한단다. 나의 고교시절 친구로, 특히 고3 때 짝은 전라남도 보성의 양조장집 아들 염동연이었다. 그는 그때도 신장이 작아 5번 대였고, 나는 20번 대로 그보다 두 줄 뒷자리였다.
그런데 그는 그때부터도 영남 친구에게 호감을 가졌나 보다. 그는 굳이 담임 선생님에게 부탁해 내 옆자리로 옮겨와 1년간 짝을 했다. 그러면서 지지리도 가난한 경상도 구미 촌놈을 수시로 자기 집에 데려가서 주린 배를 채워주고 잡부금을 대납해 주는 등 물심양면으로 많이 도와줬다.
그래서 그와 나는 그해 연말 겨울방학 때 서해 바닷가 외딴 집에 가서 대입 수험공부도 같이 했다. 대학생이 된 이후 그의 초대로 나는 난생 처음 그의 고향집 전라도 보성에도 가봤다. 후일 그 친구가 뜻밖에도 노무현 대통령 후보 캠프장으로, 대통령 만드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그의 사람 보는 안목에 감탄했다.
그래서 이번 노무현 대통령 이야기 편을 쓰면서 나보다 노 대통령을 더 잘 아는 그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러자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여태 시민기자로 바닥을 기고 있는 친구를 그는 어여삐 본 듯, 내 청을 흔쾌히 승낙해 줬다.
1996년 종로에서 3등으로 낙선한 노무현은 6년 후 2002년 12월에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이 됐다. 이는 귀신이 곡할, 경천동지할 노릇이 아닌가? 변방의 부산상고 출신이 천하의 경기고, 서울 법대 출신의 전 국무총리 이회창 후보를 꺾고 대한민국 대통령이 됐다니!
그건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 성공확률보다도 훨씬 더 기대치가 낮지 않은가! 내가 그런 얘기를 하자, 염동연 전 의원은 '자네만 그랬던 게 아니었다'고 당시의 일화를 조심스럽게 들려줬다.
얼굴에 찬바람이 난 노무현... "허, 나 원 참"
▲ 노무현 생가 | |
ⓒ 박도 |
2001년 초 이제 막 출범한 금강캠프(노무현 후보캠프)에 여러 인사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한 인사를 좌장으로 모시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이 나왔다. 그는 2020년 지금 야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다.
그리하여 한 참모가 노무현 장관(당시 해양수산부장관)을 수행하고 가서 그 인사를 만났다. 그런데 얼마 후 캠프로 돌아온 노 장관의 심기가 몹시 불편해 보였다. 얼굴에서 찬 바람이 났다.
"그 사람이 나를 알기를... 허, 나 원 참!"
"왜 그러세요?"
"아니, 나 원... 창피해서 얘기하기도 싫네요."
노무현 장관은 감정을 삭이고자 그대로 캠프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염동연은 당시 동행한 참모에게 내막을 물었다. 그 참모는 "노 장관 면전에서 '당신이 대통령 된다면 대통령 안 될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는 투로 말을 했다"라고 전했다.
이 일이 일어나고 1년 뒤, 노무현은 대통령에 당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