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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의 옥중독서... 내일을 준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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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기념사업회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329회   작성일Date 20-08-06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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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도소에 수감 중일 때의 DJ
      교도소에 수감 중일 때의 DJ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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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아직 할 일이 남아있습니다"

    김대중을 태운 승용차는 한참을 달린 뒤 그를 어느 빌딩 다다미방에 내려놨다. 이후 납치범들은 김대중의 온몸을 묶었던 끈을 풀고 옷을 벗긴 뒤 다시 허름한 옷으로 갈아입혔다. 신발도 구두 대신에 운동화로 갈아 신겼다. 그런 뒤 그들은 김대중을 다시 끈으로 칭칭 묶었다. 그리고는 화물포장용 강력 테이프로 얼굴만 남기고 몸 전체를 둘둘 감은 뒤 모터보트에 태웠다.

    보트 위에서 납치범들은 김대중의 머리에 보자기 같은 것을 씌웠다. 순간 김대중은 죽음을 직감하면서 성호를 그었다. 그때 한 납치범이 김대중의 배를 걷어차며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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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새끼가!"

    모터보트는 1시간 쯤 달린 뒤 커다란 배로 김대중을 옮겨 실었다. 한 행동대원이 김대중을 때렸다.

    "나는 이미 죽음을 각오한 사람이오. 굳이 때릴 필요는 없지 않소."

    그 말 탓인지 매질이 그쳤다. 그때까지 김대중을 납치한 무리들은 다른 무리들에게 인계하는 것 같았다. 김대중은 갑판 선실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온몸은 더욱 촘촘하게 묶였다. 두 손을 가슴에 모으게 한 뒤 묶고, 두 발도 묶었다. 몸 위, 아래, 가운데, 세 토막으로 나눠 흡사 시체를 염하듯 묶었다. 손목에는 30~40kg 무게의 돌인지 쇳덩이인지를 달았다.

    "이만하면 바다에 던져도 풀리지 않겠지?"

    그런 말이 김대중의 귀에 들렸다. 곧 바다에 던질 게 분명해 보였다. 김대중은 갑자기 살고 싶은 생각이 엄습했다. 그 순간 예수님이 바로 앞에 서 계셨다. 성당에서 봤던 예수님에게 그 모습이었다. 김대중은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들었다.
     
    '살려주십시오, 저는 아직 할 일이 남아있습니다.'
      
    순간 눈에 붉은 빛이 번쩍 스쳤다. 갑자기 엔진소리가 폭음처럼 요란하더니 배가 미친 듯이 요동치며 내달렸다. 선실에 있던 납치범들의 소리가 들렸다.

    "비행기다!"

    폭음 같은 게 들리고 배는 전속력으로 달렸다. 그렇게 30여 분 달리던 배가 속도를 줄였다. 사방이 조용해졌다. 
      
     동교동 자택으로 돌아온 직후 전화를 받는 DJ
      동교동 자택으로 돌아온 직후 전화를 받는 DJ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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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 돌아오다

    납치 엿새째인 8월 13일 오후가 되자 납치범 행동대원 하나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왜 선생은 해외에서 국가에 반대하는 투쟁을 벌이는 겁니까?"
    "내가 반대하는 것은 독재정권이지 국가가 아니오."
    "국가가 정권이지, 국가와 정권이 다를 게 무엇이란 말이오?"


    잠시  뒤 그런 그가 돌연 화제를 바꿨다.

    "김대중 선생, 협상 좀 합시다."
    "말해 보시오."
    "지금부터 선생을 차에 태워 집 근처에 풀어드릴 거요. 그 사이 눈을 감은 붕대(안대)는 풀어도 안 되고 소리를 내도 안 됩니다. 거기서 소변을 다 본 다음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좋소."
     

    그들은 김대중의 눈을 안대로 가린 다음 2시간여 달렸다. 김대중은 그들의 정체를 물었다. 그들은 '구국동맹단체'라고 말했다. 잠시 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반공단체'라고 정정했다.

    이윽고 차가 멈췄다. 그들은 김대중에게 차에서 내리라고 했다. 김대중은 그들과 약속한대로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소변을 봤다. 그런 뒤 눈을 가리던 붕대를 풀었다. 한참 지나자 언저리 사물들이 서서히 시야에 들어왔다. 집 가까운 주유소 간판이 낯익었다. 긴 악몽에서 깨어난 순간이었다.  
      
     DJ 동교동 집 문패
      DJ 동교동 집 문패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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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은 동교동 자택 근처 골목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달빛이 밝았다. 하늘에는 보름달이 두둥실 떠 있었다. 김대중은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치 저녁 산책을 끝내고 돌아가듯이. 대문 앞에 서서 문패를 올려다봤다. '김대중 이희호' 문패가 물끄러미 김대중을 내려다봤다. 골목에는 인척이 없었다. 집안에서 불빛이 새어나왔다. 김대중은 초인종을 눌렀다. 막 직장에서 퇴근하는 이처럼.

    인터폰에서 누구냐고 물었다.

    "나다. 나야."

    그 말에 집안사람들이 모두 우르르 몰려나왔다. 모두들 맨발이었다.
      
     1976년 3.1 민주 구국선언 직후 촛볼시위에 나선 DJ
      1976년 3.1 민주 구국선언 직후 촛볼시위에 나선 DJ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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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중편지

    귀국 후 교도소 수감 아니면 가택연금의 연속이었다. 1977년 4월 14일, 진주교도소로 이감됐다. 김대중은 특별히 격리돼 독방에 갇혔다. 좌우 옆방과 맞은편 방도 비워놓고 간수 몇이서 밤낮으로 감시했다. 날마다 교도소 담 밑에서 찬송을 부르고 구호를 외치고 기도를 했다. 간혹 그들의 외침이 들렸다.

    "우리가 있으니 걱정 마십시오."

    그들의 외침이 복음처럼 들렸다. 옥중에서 아내의 편지는 늘 용기와 힘을 주었다.
     
     만년의 김대중 대통령 부부
      만년의 김대중 대통령 부부
    ⓒ 민화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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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는 두 매의 엽서를 보냈습니다. 거리만 먼 것이 아니고, 만남 또한 먼 사람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자주 글을 보내고자 합니다. 당신의 그 어려운 고난에 내가 어떻게 동참할 수 있겠습니까. 내 성의와 노력과 수고의 부족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신앙과 기도의 부족도 느끼고 있습니다.

    진주는 처음 가본 곳이지만 정들고 그리운 곳이 되었습니다. 그곳에 도착하던 날 교도소를 밖에서만 바라보고, 그리고 논개 사당과 논개가 투신한 곳, 그곳 바위, 그 물을 내려다보면서 일개 기생이던 그의 애국심에 만분의 일도 본받지 못하는 값없는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오늘의 세태를 안타가워하면서 느끼는 바가 많습니다.

    뜻깊은 진주 땅에 정을 쏟게 된 것은 확실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진주는 공기가 맑고 많은 환자가 진주에 와서 병을 치유하고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당신의 병도 그곳에서 기적적으로 완치되기를 간절히 빕니다. 정말 놀라운 기적 없이는 어떻게 그 아픔을 견딜 수 있겠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일게 모르게 당신과 비슷한 그 모습으로 좁고 험한 그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과거의 그러했듯이, 예수님의 길이 그러했듯이. 참과 의가 십자가상에서 내일의 새아침을 기다리고, 그리고 소망 때문에 오늘을 찬고 견디며 매일매일을 이겨나가고 있는 줄 믿습니다. 이기고 또 이겨나가세요. (...)" - 1977년 4월 24일. 이희호 지음 <옥중서신2> 106쪽

     
     수형생활 중 독서하는 DJ
      수형생활 중 독서하는 DJ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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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옥에서 독서

    김대중에게 감옥에서 독서는 참으로 유익했다. 독서란 원래 간접경험이긴 하지만, 옥중에서 읽는 책은 그 이상이었다. 김대중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정독할 수 있기에 어떤 때는 저자와 대화를 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역사‧종교‧경제‧사상‧문학 서적 등을 탐독했다. 한 책 당 하루에 20쪽 또는 30쪽을 읽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여러 권을 번갈아 읽었다.

    특히 아널드 토인비가 지은 <역사의 연구>(12권)는 특별한 영감과 함게 미래에 대한 확신을 심어줬다. 신이 시련을 주면 인간은 그에 대한 응답을 통해서 성장하고 발전하며, 문명은 도전에 대한 응전의 산물이라는 토인비의 주장은 가히 탁견이었다.

    문명의 흥망성쇠는 숙명론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환경으로부터 도전에 대하여 응전에 성공한 집단만이 문명의 비약적 발전을 성취할 수 있음을 알았다. 민족뿐 아니라 시련에 처한 내 운명의 앞길을 밝혀 주는 것처럼 보였다.
       
     가택 연즘 중인 김대중 부부(1979년 겨울, 달력에 X는 연금 일자 표시.)
      가택 연즘 중인 김대중 부부(1979년 겨울, 달력에 X는 연금 일자 표시.)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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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은 위기와 역경을 자기 발전의 기회로 삼았다. 그는 감옥을 흡사 '인생대학교'로 승화시킨, 절망 속에서도 내일을 준비한 의지의 인물이었다.

    1979년 10월 27일, 새벽 4시쯤 전화벨이 울렸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걸려온 한 지인이었다.

    "간밤 박정희 대통령이 총격으로 사망했답니다."

    그 소식은 새벽처럼 서늘했다. 권력은 비정했다. 충복으로 알았던 경호실장 차지철도 피를 흘리는 대통령을 놔두고 화장실로 도망쳤다. 박정희 사도들은 홀연 연기처럼 흩어졌다.
     
     바깥에서 본 DJ 생가
      바깥에서 본 DJ 생가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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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대중 회고록> 등 수십 권의 참고자료와 동시대 신문 및 여러 사람들의 증언으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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