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1세대 이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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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해 2020년 6월 10일은 이희호 여사 서거 1주기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년 전 2019년 6월 10일에 향년 97세로 별세하셨습니다.
이희호 여사는 대통령 영부인, 김홍걸 의원의 어머니로 알려져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김홍걸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의 세번째 아들이죠)
그러나 더욱 중.요.한. 사.실.은
우리나라 1세대 페미니스트로서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이희호 여사는 우리나라에서 '페미니스트'라는 단어 자체가 낯설던 시절부터
남녀 평등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시대를 앞서는 여성지도자 로서
대한민국 여성 인권 향상과 남녀가 동등한 사회를 위해 일평생을 바쳤습니다.
지금의 우리나라의 가정폭력방지법 제정, 남녀차별금지법 제정, 여성가족부 창설 등
여성 인권 운동 성과에 이희호 여사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희호 여사가 별세하자,
"여사님은 정치인 김대중 대통령의 배우자,
영부인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1세대 여성운동가입니다."
라고 표현했습니다.
1세대 페미니스트, 여성지도자 이희호 여사를 소개하자면,
이희호 여사는 당당하고 진취적인 성향의 신여성 이미지가 잘 드러나는 옷을 즐겨입었다고 합니다.
그런 면모가 사진에도 잘 담겨있습니다^^ (김홍걸 의원이 페이스북에 방출한 이희호 여사 사진)
"내 양심에 비추어 일생을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의 인권을 존중하고 높이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남편과 함께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한 길을 걸었다는 것을 기억해주었으면 합니다."
(이희호 여사, 2016년 11월 2일 한겨레 인터뷰)
김대중 대통령은 "내가 나름대로 페미니스트적인 관점과 행동을 실천할 수 있었던 건 아내의 조언 덕이었다."라고 이야기 한 적있습니다.
실제 <국민의 정부> 시절의 여성 정책에 큰 변화들이 이루어졌습니다.
이희호 여사는 권위적인 가부장제하에서 희생만 강요당하는 농촌 여성들의 모습을 보며 문제의식을 느꼈고, 이후 여성운동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1959년 이희호 여사는 여성운동, 계몽운동을 펼치는 단체인 대한YWCA 총무로 사회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첫번째 캠페인은 '혼인신고 합시다' 였습니다.
당시 첩 문화가 만연한 사회에서, 일부다처제로 고통받는 여성들을 위한 해방 운동 이었습니다.
많은 여성들이 자식을 낳고 살다가 젊고 많이 배운 후처(첩)가 혼인신고를 먼저 해버려 빈손으로 쫓겨나는 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1960년 4.19 혁명 후 첫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축첩자(첩을 둔 자)를 국회에 보내지 말자'는 당시 상상하기도 어려운 파격적인 운동을 펼쳤습니다. '아내를 밟는 자 나라 밟는다'는 현수막을 들고 거리를 활보했습니다.
이희호 여사는 다른 여성지도자들과 함께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해 '여성문제연구회' 라는 단체를 창립했습니다.
여성문제연구회는 남녀차별 법조항 철폐에 앞장섰고 1989년 '가족법'을 개정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남편인 김대중 당시 평화민주당 총재가 법 개정에 힘썼습니다.
여야 남성 국회의원의 반대를 뚫고 이뤄낸 결실이었습니다.
당시 가족법에는 남편은 8촌까지 친족으로 인정하면서, 아내는 4촌까지만 친족으로 인정하는 불평등한 조항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바로잡아 재산권과 상속권 행사에 남녀가 동등한 지위를 갖게됐습니다.
이희호 여사는 "남녀평등의 조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길 중의 하나가 정치"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정치인 김대중과 함께 남녀가 평등한 사회라는 그 꿈을 향해 실천해나갔습니다.
동교동 집 문패에 김대중, 이희호 이름을 함께 걸어두었다는 이야기는
이희호 여사의 당찬면모와 한편으로는 그러한 이희호 여사를 존중하는 김대중의 마음이 전해집니다.
이후 김대중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는 집 문패 뿐 아니라 대한민국 정책에도
우리나라 여성의 인권 신장을 위한 고민과 노력들을 담아냈습니다.
1998년 가정폭력방지법, 1999년 남녀차별금지법을 제정하면서 성차별 근절을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김대중 정부 시절 2001년에 최초로 여성부가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여성의 사회진출도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그동안 청와대에 한 명뿐이었던 여성 비서관이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 시절 열 명으로 늘었고,
여성부, 문화관광부, 환경부, 보건복지부가 신설돼면서 여성장관은 네명이나 배출되었습니다.
아래 사진에서도 가운데 자리에 앉아 포스를 마구 풍기는 이희호 여사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한껏 머리를 부풀리고 선글라스와 원피스를 입고 멋을 냈습니다.
좌측에는 갓난아기인 지금의 김홍걸 의원을 안고 있는 김대중, 그리고 우측에는 첫째형 김홍일입니다.
대한민국 여성 인권의 중심에 서있던 이희호 여사 서거 1주기를 맞으며 고인의 철학과 이념을 기리고,
그 뜻을 실천으로 옮기는 정치를 약속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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