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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노벨상 수상 선정 발표문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한국과 동아시아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그리고 특히 북한과의 화해를 위해 노력한 업적을 기려 2000년 노벨평화상을 김대중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한국이 수십 년 간 전제주의의 통치하에 있을 때, 수 차례의 생명에 대한 위협과 장기간의 망명생활에도 불구하고 김대통령은 점차적으로 한국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부상했다.


    1997년 그가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한국은 세계의 민주국가 대열에 확고히 자리잡았다. 대통령으로서 김대중씨는 확고한 민주 정부의 수립과 한국에서의 내부적 화합 증진을 추구해 왔다.


    강력한 도덕적 힘을 바탕으로 김대통령은 인권을 제한하려는 시도들에 맞서 동아시아 인권수호자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버마(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지지하고 동티모르의 인권탄압에 반대하는 그의 헌신적 노력 역시 괄목할만한 것이었다.


    ‘햇볕정책’을 통해 김대통령은 50년 이상 지속된 남북한 간의 전쟁과 적대관계의 해소에 노력해왔다. 그의 북한 방문은 남북한 간의 긴장을 완화하는 과정에 큰 동력이 되었다. 이제 한반도에 냉전이 종식되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김대통령은 또한 인근 국가들, 특히 일본과의 화해를 위해 노력해왔다. 노벨 위원회는 한반도의 화해 진전과 통일을 위한 북한 및 여타 국가 지도자들의 기여를 인정하고자 한다.


    The Norwegian Nobel Committee has decided to award the Nobel Peace Prize for 2000 to Kim Dae Jung for his work for democracy and human rights in South Korea and in East Asia in general, and for peace and reconciliation with North Korea in particular.
    In the course of South Korea's decades of authoritarian rule, despite repeated threats on his life and long periods in exile, Kim Dae Jung gradually emerged as his country's leading spokesman for democracy. His election in 1997 as the republic's president marked South Korea's definitive entry among the world's democracies. As president, Kim Dae Jung has sought to consolidate democratic government and to promote internal reconciliation within South Korea.
    With great moral strength, Kim Dae Jung has stood out in East Asia as a leading defender of universal human rights against attempts to limit the relevance of those rights in Asia. His commitment in favour of democracy in Burma and against repression in East Timor has been considerable.

    Through his "sunshine policy", Kim Dae Jung has attempted to overcome more than fifty years of war and hostility between North and South Korea. His visit to North Korea gave impetus to a process which has reduced tension between the two countries. There may now be hope that the cold war will also come to an end in Korea. Kim Dae Jung has worked for South Korea's reconciliation with other neighbouring countries, especially Japan.
    The Norwegian Nobel Committee wishes to express its recognition of the contributions made by North Korea's and other countries' leaders to advance reconciliation and possible reunification on the Korean peninsula.

    Oslo, 13 October 2000


     

     



    2. 노벨상 수상식 연설문

     

    노벨상 수상식 연설문

    군나르 베르게

    노르웨이 노벨상위원회 위원장 (2000.12.10.)


    왕림하신 폐하 그리고 신사숙녀 여러분!

    노르웨이 노벨상위원회는 2000년 노벨평화상을 김대중 대통령에게 수여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김대통령은 동아시아에서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기울인 평생의 노력, 특히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노력으로 이 상을 수상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막 시작된 것에 불과한 화해의 절차를 위해상을 수여하는 것이 시기상조가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그에 대한 대답으로 김대통령의 인권을 위한 그동안의 노력이 최근 남북한관계의 진전과는 별도로 수상후보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과의 화해를 위한 강력한 김대통령의 다짐 및 이행과, 특히 지난 1년동안 이룩한 업적이 이번 수상에 새롭고 중요한 몫을 더한 것도 역시 명백합니다.


    국제 평화 노력의 역전가능성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노벨상위원회는 "해보려고 애쓰는 시도가 없으면 얻는것도 없다"는 원칙에 충실했습니다. 평화상은 지금까지 이룩해온 조처에 대해 수여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노벨평화상의 역사에서 자주 보아온 것처럼 올해도 역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머나먼 길에 더욱 진척이 있기를 격려하는 뜻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이는 넓은 범위에서 용기의 문제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고착화된 50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아마 세계에서 가장 중무장된 전선 너머로 협조의 손길을 뻗으려는 의지를 지녀왔습니다. 그의 의지는 개인적, 정치적 용기이며 유감스럽게도 다른 분쟁지역에서는 너무 자주 결여되어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인 삶에서 적용되는 똑같은 이치가 평화를 위한 노력에도 적용됩니다. 가장 높은 산을 등정하려 할때의 이치가 그것입니다. 첫걸음이 가장 어렵습니다. 그러나 거대한 등정길의 마무리에 이르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많은 동반자들에게 의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노르웨이 남서부의 항구도시 스타번게르의 작가 군나르 롤드크밤은 그가 쓴 시 "마지막 한 방울"에서 다음과 같이 명료하면서도 적절하게 표현했습니다.


    현재 김대중씨는 민주한국의 대통령입니다. 김대통령의 집권까지의 노정은 멀고도 먼 길이었습니다. 수십 년 동안 그는 권위주의 독재체제와 승산이 없어 보이는 싸움을 했습니다. 그가 어디에서 그러한 힘을 찾을 수 있었는지 물어볼만 합니다. 그 자신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독재체제에 항거하기 위해 온 힘을 쏟았습니다. 왜냐하면 국민을 지키고 민주주의를 추진해갈 다른 방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 스스로를 강도가 침입한 집의 주인같이 느꼈습니다. 내가족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는 내 자신의 안위는 접어두고 맨손으로라도 침입자와 싸워야 했습니다."


    1950년대 김대중씨가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했을 때, 경찰은 집권체제가 내세운 후보이외의 다른 후보에 대한 지지를 방해하고 나섰습니다. 1961년에 가서야 그는 피선되었지만 그의 성공은 단명했습니다. 3일 후에 일어난 군사쿠테타로 국회는 해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김대중씨는 단념치 않았습니다. 1963년 거의 10년 세월의 정치적 투쟁 끝에 그는 드디어 야당의원으로 국회의석을 차지했습니다. 꼭 덧붙여 말씀드려야 할 것은 여당이 그를 매수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김대중씨는 매수될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1971년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씨는 상당한 투표조작에도 불구하고 유효투표의 46%를 획득했습니다. 이것으로 그는 군사체제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여러 해를 처음에는 감옥에서 나중에는 가택연금과 일본과 미국에서의 망명생활로 보냈습니다. 그는 또 납치와 암살기도를 겪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시련을 어떻게든 견디어내면서 그는 체제에 대한 뚜렷한 반대 입장을 지속해 나갔습니다.


    노르웨이 국회대표단의 일원으로 나는 1979년 한국을 방문했으며, 그 방문을 통해 김대중씨 지지자들과 접촉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때 스칸디나비아에서 중요한 연결고리로서 봉사할 수 있었던 것을 기쁘게 여깁니다.


    가혹한 교도소 환경 속에서도 김대중씨는 삶을 바쳐서 해야 할 일을 찾아내게 되었습니다. 불굴의 낙관적 태도를 가지고 그는 교도소 안에서 발견한 "즐거움"에 대하여 썼습니다. 동양과 서양의 모든 종류의 서적 통독이 그것입니다. 신학, 정치학, 경제학, 역사 그리고 문학서적들입니다. 가족과의 짧은면회 시간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갖가지 방해시도가 있었음에도, 그와 가장 가까웠던 인사들로부터 편지를 받고 답장을 쓸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작은 정원에서 꽃을 돌보는 일도 허용되었습니다.


    김대중씨의 얘기는 몇몇 다른 평화상수상자, 특히 넬슨 만델라와 안드레이 사하로프의 경험과 공통되는점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상을 받지는 않았지만 수상할 자격이 있었던 마하트마 간디의 그것과 함께 말입니다. 김대중씨가 간직한 불굴의 정신은 국외자들에게 거의 초인적인 것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이런점에서, 이번 수상은 보다 진지한 면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내가 6, 7차례 투옥되고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기 때문에 용감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실은 나는 어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겁이 많다. 그간의 경험에서 볼 때, 투옥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철창에 갇힐 때마다 너무 무섭고 초조했다”고 그는 말합니다.


    김대중씨는 1987년과 1992년 두 차례 더 출마했습니다. 군사정권이 그의 길을 막고 있지 않았다면 지역으로 첨예하게 갈라진 한국에서 그의 출신지가 잘못되었다는 말이 그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투쟁에 지친 그는 드디어 1992년 선거 후 정치일선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러나 1997년, 김대중씨는 새로운 기회를 보았습니다. 놀랍게도, 그의 정적들이 서로 분열된 가운데 군사정권의 주요 적수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정말 드디어 한국이 세계 민주주의국가 대열에 오르게 되었음을 확실히입증한 것입니다.


    새 대통령은 보복할 생각을 틀림없이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넬슨 만델라의 경우처럼 용서와 화해가 김대중씨의 주요 정강정책들이 되어 그를 그 방향으로 나아가게 했습니다. 김대중씨는 용서할 수 없는 것까지 포함해서 모든 것을 용서했습니다. 대신, 민주적인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심지어 혁명 후에도 구질서의 일면은 남게 마련입니다. 민주적인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은 법제도와 보안법 문제에 관한 한 개혁해야 할 부문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국제사면위원회에 의하면 한국의 교도소에는 정치범으로 장기형을 받은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고 합니다. 노조 결성권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있습니다. 우리는 근 반세기동안 민주주의를 앞장 서 대변해온 김대통령이 민주화 과정을 마무리 해 줄것으로 확신합니다.


    현재 아시아에서는 인권에 관한 중요한 토론이 진행 중입니다. 혹자는 인권이 서방에서 나온 것으로 서구의 정치적, 문화적 지배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라고 주장합니다. 김대중씨는 이러한 시각을 부정하면서 보편적인 인권과 다른 아시아적인 특별한 인권이 따로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금년도 평화상 시상의 근거로 노벨상 위원회는 똑같은 생각을 갖고, 동아시아의 인권상황 진전에 김대중씨가 맡은 중요한 역할에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1996년의 평화상 수상자인 호세 라모스 오르타씨와 마찬가지로 김대중씨는 동티모르의 대의를 위해 온힘을 기울였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정치적 반대자들을 탄압하는데 사용되었던 한국군이 이제는 동티모르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참가토록 결정하는데 엄청난 상징적 힘이 발휘되었습니다. 김대중씨는 또한 1991년도 평화상 수상자인 아웅산 수지 여사가 미얀마의 독재에 항거, 영웅적인 투쟁을 벌이는 것을 적극 지원했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마음은 과거 평화상 시상식에 참석할 수 없었던 그녀와 함께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미얀마 정권은 또 다시 아웅산 수지에 대한 압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김대중씨는 한국의 전면적인 개혁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햇볕정책”을 통해 북한과 적극적인 협조관계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김대중씨는 남한이 북한을 합병하거나 흡수할 의도가 전혀 없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시간이 걸리고 아주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목표는 통일인 것입니다.


    “햇볕”이라는 단어는 이솝우화에 나오는 해와 달이 한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내기를 한데서 따온것입니다. “햇볕정책”은 바람을 막지 않더라도 남북한이 공동의 이익을 서로 나누고 이를 강화함으로써 최소한의 추위를 누그러뜨리자는 것입니다.


    김대중씨가 현재 진행 중인 해빙과 화해의 주동자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아마 그의 역할은 동서독간의 관계정상화에 아주 중요한 동방정책(ostpolitik) 추진으로 노벨 평화상을 탄 빌리브란트에 비교될 수 있습니다. 브란트의 동방정책만으로는 통독이 불가능했지만 1989-90년의 독일통일에 필수불가결 했습니다.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통독의 정치적인 면은 매력적으로 보이겠지만 경제적 비용이 독일보다 훨씬 더 들것이란 점에서 서둘러서는 안된다는 경고인 것입니다. 지난 6월 김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 간의 대화는 보다 느슨한 선언과 경쾌한 수사(修辭)로 발전되었습니다. 남북이산가족 상봉장면은 전세계에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접촉이 아무리 제한되고 통제된다 하더라도 기쁨의 눈물은 판문점의 모든 방문자들이 절실히 느끼는 추위와 증오, 그리고 실망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것입니다.


    북한주민들은 오랫동안 극도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국제사회는 그들의 굶주림을 외면하거나 엄청난 정치적 탄압에 침묵할 수는 없습니다. 한편, 북한 지도자들은 남북한 화해를 향해 첫발을 내딛게한 역할을 인정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냉전의 빙하시대는 끝났습니다. 세계는 햇볕정책이 한반도의 마지막 냉전 잔재를 녹이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 과정은 시작되었으며 오늘 상을 받는 김대중씨보다 더 많은 기여를 한 분은 없습니다. 시인의 말처럼, “첫 번째 떨어지는 물방울이 가장 용감하노라.”



    3. 김대중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연설문

     

    국왕 폐하, 왕세자와 공주 등 왕실가족 여러분, 노르웨이 노벨위원회 회원 여러분, 그리고 내외 귀빈과 신사 숙녀 여러분. 



    노르웨이는 인권과 평화의 성지입니다. 노벨평화상은 세계 모든 인류에게 평화를 위해 헌신하도록 격려하는 숭고한 메시지입니다. 저에게 오늘 내려주신 영예에 대해서 다시없는 영광으로 생각하고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저는 한국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민족의 통일을 위해 기꺼이 희생한 수 많은 동지들과 국민들을 생각할 때 오늘의 영광은 제가 차지할 것이 아니라 그 분들에게 바쳐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 국민의 민주화와 남북 화해를 위한노력을 아낌없이 지원해 주신 세계의 모든 나라와 벗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 노벨평화상을 저에게 주신 이유 중의 하나는 지난 6월에 있었던 남북 정상회담과 그 이후에 전개되고 있는 남북 화해•협력 과정에 대한 평가라고 알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노벨위원회가 긍정적으로 평가해 준 최근의 남북관계에 대해 몇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지난 6월에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북한에 갈 때 여러가지 걱정이 많았지만 오직 민족의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일념으로 출발했던 것입니다. 회담이 잘 된다는 보장도 없었습니다. 남북은 반세기 동안 분단된 가운데 3년에 걸친 전쟁을 치렀으며 휴전선의 철책을 사이에 놓고 불신과 증오로 50년을 살아 왔습니다.


    이러한 남북관계를 평화와 협력의 방향으로 돌리기 위해 저는 98년 2월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햇볕정책을 일관되게 주장했습니다. 그것은 첫째, 북에 의한 적화통일을 용납하지 않는다.둘째,남에 의한북한의 흡수통일도 결코 기도하지 않는다. 셋째, 남북은 오로지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평화적으로 교류•협력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완전한 통일에 이르기까지는 얼마가 걸리더라도 서로 안심하고 하나가 될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북한은 처음에는 우리 햇볕정책을 북한을 전복시키려는 음모로 여기고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일관되고 성의있는 자세와 노르웨이를 비롯한 전세계 모든 나라의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는 마침내 북한의 태도를 바꾸게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남북 정상회담은 예상했던 대로 참으로 힘든 협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두 사람은 민족의 안전과 화해·협력을 염원하는 입장에서 결국 상당한 수준의 합의를 도출해 내는 데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첫째, 우리는 조국의 통일을 자주적이고 평화적으로 이룩하자, 또 통일을 서두르지 말고 우선 남과 북이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평화적으로 교류 협력하기 위해 전력을 다 하자는데 합의했습니다.


    둘째,종래 남북 간에 현격한 차이가 있었던 통일방안에 대해서도 상당한 합의점을 도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북한은 우리가 주장한 통일의 전 단계인 ‘1민족 2체제 2독립정부’의 ‘남북연합제’에 대해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는 형태로 접근해 왔습니다. 분단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통일에의 제도적접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셋째, 한반도에 미군이 계속 주둔해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안전을 유지하도록 하자는 데에도 합의했습니다.


    북한은 지난 50년 동안 남한에서의 미군 철수를 최대 쟁점으로 주장했습니다. 저는 김정일 위원장에게 강조했습니다. “미·일·중·러의 4강에 둘러싸여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특수한 지정학적인 위치에 있는 우리로서는 미군의 한반도 주둔은 필수 불가결하다. 미군은 현재 뿐 아니라 통일 후에도 필요하다. 유럽을 보라. 당초 ‘나토’의 창설과 미군의 주둔은 소련과 동구 공산권의 침략을 막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공산권이 멸망한 지금도 ‘나토’와 미군이 있지 않느냐. 유럽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그 존재가 계속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 김정일 위원장은 뜻밖에도 종래의 주장을 접고 적극적인 찬성의 뜻을 나타냈는데, 이는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참으로 뜻깊은 결단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우리는 이산가족이 만나는 데 합의했으며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원만하게 실천에 옮겨지고 있습니다. 경제협력에 대해서도 합의를 했습니다. 이미 투자보장, 이중과세방지 등 4개의 협정을 체결하는 합의서에 서명했습니다. 우리는 그 동안 북한에 대해 인도적 차원에서 비료 30만t과 식량 50만t을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사회·문화 교류에 대해서도 합의해 스포츠, 문화예술, 관광 교류 등이 점차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또한 남북간 긴장 완화와 평화 정착을 논의하기 위한 남북 국방장관회담이 열려 ‘다시는 전쟁을 하지말자’는 데 합의했습니다. 남북 간의 분단된 철도와 도로를 다시 연결하기 위해 양쪽 군이 협력하는데에도 합의했습니다.


    한편 저는 남북관계의 개선만으로는 한반도에서 평화와 협력을 완벽 하게 성공시킬 수 없다는 판단 아래,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나아가 일본과 다른 서방국가들과도 관계를 개선할 것을 적극 권유했습니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와서 ‘클린턴’대통령, ‘모리’총리 등 미·일 양국의 정상에게도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권고했습니다.


    또한 저는 지난 10월에 서울에서 열렸던 제3차 ASEM 정상회의에서 유럽의 우방국가들에게도 북한과 관계 개선을 하도록 권고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지금 북·미 관계와 유럽·북한 관계는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한반도의 평화에 결정적인 영향과 진전을 가져다 줄것입니다.


    존경하는 귀빈 여러분.


    제가 민주화를 위해서 수십 년 동안 투쟁할 때 언제나 부딪힌 반론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시아에서는 서구식 민주주의가 적합하지 않으며 그러한 뿌리가 없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아시아에는 오히려 서구보다 훨씬 더 이전에 인권사상이 있었고 ,민주주의와 상통한 사상의 뿌리가 있었습니다. ‘백성을 하늘로 삼는다. ’‘사람이 즉 하늘이다. ’‘사람 섬기는 것을 하늘 섬기듯하라.’ 이런 것은 중국이나 한국 등지에서 근 3,000년 전부터 정치의 가장 근본요체로 주장되어 온 원리였습니다. 또한 2,5000년 전에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에서는 ‘이 세상에서 내 자신의 인권이 제일 중요하다’ 는 교리가 강조되었습니다.


    이러한 인권사상과 더불어 민주주의와 상통되는 사상과 제도도 많이 있었습니다. 공자의 후계자인 맹자는 ‘임금은 하늘의 아들이다. 하늘 이 백성에게 선정을 펴도록 그 아들을 내려 보낸 것이다. 그런데 만일 임금이 선정을 하지 않고 백성을 억압한다면 백성은 하늘을 대신해 들고일어나 임금을 쫓아낼 권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존 로크가 그의 사회계약론에서 설파한 국민주권사상보다 2,000년이나 앞선 것입니다.


    중국과 한국에서는 이미 기원전에 봉건제도가 타파되고 군현제도가 실시되었습니다. 공무원을 시험에 의해서 뽑는 제도는 1,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병행해서 임금을 포함한 고관들의 권력 남용을 감시하는 강력한 사정제도도 존재했습니다. 이와 같이 민주주의에 대한 풍부한 사상과 제도의 뿌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다만 아시아에서는 대의적 민주제도의 기구는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서구사회의 독창적인 것으로서 인류의 역사에 크게 기여한 훌륭한 업적이라고 할 것입니다.


    서구의 민주제도는 민주적 뿌리가 있는 아시아에서 이를 채택할 때 아시아에서도 훌륭하게 기능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일본·필리핀·인도네시아·태국·인도·방글라데시·네팔·스리랑카 등 수 많은 사례들이 있습니다. 동티모르에서 주민들이 민병대의 혹독한 학살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가지고 독립을 지지하는 투표에 참가했습니다. 지금 미얀마에서 아웅산 수지 여사가 고난의 투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아웅산 수지 여사는 미얀마 국민과 민심의 폭 넓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저는 언젠가 미얀마에 민주주의가 반드시 회복되고 국민에 의한 대의정치가 다시 부활하는 날이 오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민주주의는 인간의 존엄성을 구현하는 절대적인 가치인 동시에 경제 발전과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민주주의가 없는 곳에 올바른 시장경제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또한 시장경제가 없으면 경쟁력 있는 경제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민주주의적 기반이 없는 국가경제는 사상누각일 뿐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98년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과 함께 ‘생산적 복지’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지난 2년 반 동안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생산적 복지의 병행 실천이라는 국정철학 아래 국민의 민주적 권리를 적극 보장하고 있습니다. 금융·기업·공공·노동 부문의 4대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습니다. 복지의 중점을 저소득층을 포함한 모든 국민의 인력 개발에 둠으로써 이제 상당한 성과를 올리고 있습니다.


    한국의 개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이러한 개혁을 조속히 마무리함으로써 전통산업과 정보산업, 생물산업을 삼위일체로 발전시켜 세계 일류경제를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21세기는 지식정보화시대로서 부(富)가 급속히 성장하는 시대입니다. 동시에 정보화시대는 부의 편차가 심화되어 빈부격차가 급격히 확대되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국내뿐만 아니라 국가 간의 빈부격차도 커져갑니다. 이것은 인권과 평화를 위협하는 또 하나의 심각한 현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21세기에 있어서도 계속해서 인권의 탄압과 무력의 사용을 적극 반대해야 합니다. 아울러 정보화에서 오는 새로운 현상인 소외계층과 개발도상국의 정보격차를 해소함으로 써 인권과 평화를 저해하는 장애요인을 제거해야 합니다.


    존경하는 국왕 폐하, 그리고 신사 숙녀 여러분.


    마지막으로 제 개인에 대해서 잠시 말씀드릴 것을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독재자들에 의해서 일생에 다섯 번에 걸쳐서 죽을 고비를 겪어야 했습니다. 6년의 감옥살이를 했고, 40년을 연금과 망명과 감시 속에서 살았습니다.


    제가 이러한 시련을 이겨내는 데에는 우리 국민과 세계의 민주인사들의 성원의 힘이 컸다는 것은 이미 말씀 드렸습니다. 동시에 제 개인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첫째, 저는 하느님이 언제나 저와 함께 계신다는 믿음 속에 살아 오고 있으며, 저는 이를 실제로 체험했습니다. 1973년 8월 일본 동경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을 당시 저는 한국 군사정부의 정보기관에 의해 납치되었습니다. 전 세계가 이 긴급뉴스에 경악했었습니다. 한국의 정보기관원들은 저를 일본 해안에 정박해 있던 그들의 공작선으로 끌고 가서 전신을 결박하고 눈과 입을 막았습니다. 그리고 저를 바다에던져 수장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때 저의 머리 속에 예수님이 선명하게 나타나셨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붙잡고 살려 줄 것을 호소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저를 구원하는 비행기가 와서 저는 죽음의 찰나에서 구출 되었던 것입니다.


    또 하나, 저는 역사에 대한 믿음으로 죽음의 위협을 이겨 왔습니다. 1980년 군사정권에 의해서 사형언도를 받고 감옥에서 6개월 동안 그 집행을 기다리고 있을 때 저는 죽음의 공포에 떨 때가 자주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극복하고 마음의 안정을 얻는 데는 ‘정의필승’이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저의 확신이 크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모든 나라 모든 시대에 있어서, 국민과 세상을 위해 정의롭게 살고 헌신한 사람은 비록 당대에는 성공하지 못하고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하더라도 역사 속에서 반드시 승자가 된다는 것을 저는 수많은 역사적 사실 속에서 보았습니다. 그러나 불의한 승자들은 비록 당대에는 성공을 하더라도 후세 역사의 준엄한 심판 속에서 부끄러운 패자가 되고 말았다는 것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예외가 없었습니다.


    국왕 폐하, 그리고 귀빈 여러분.


    노벨상은 영광인 동시에 무한한 책임의 시작입니다. 저는 역사상의 위대한 승자들이 가르치고 알프레도 노벨 경(卿)이 우리에게 바라는 대로 나머지 인생을 바쳐 한국과 세계의 인권과 평화, 그리고 우리민족의 화해·협력을 위해 노력할 것임을 맹세합니다. 여러분과 세계 모든 민주인사들의 성원과 편달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2000. 12. 10. 대한민국 대통령 김대중



    4. 제5차 노벨평화상 수상자 선언문

     


    20년 전 세계는 희망에 휩싸였다.

    평화, 자유, 민주주의와 통합을 위한 전세계에서 일어난 운동들의 영향을 받아 세계 국가들은 노력하여 냉전을 종식시켰다. 하지만 역사적 변화로 열린 많은 기회들은 현재 사라져가고 있다.

    또한 빈곤과 환경오염에 대처하지 못하는 세계 정부들의 무능력함에 우려를 표면한다.

    폭력은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유엔, 요한 바오로 2세, 달라이 라마와 다른 지도자들이 옹호하는 평화의 문화를 구축할 기회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과거로부터 계속된 도전과제 뿐 아니라 새로운 과제들도 등장했다. 이들은,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문명간, 종교간, 문화간 충돌을 가져올 수있다. 우리는 이러한 충돌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든 종류의 테러에 굳은 의지를 가지고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공동의 윤리적 가치들(인권 존중, 기본적인 자유 등)을 강화시키고 민주주의 원칙을 따라야만 테러가 종식될 수 있다. 우리는 폭력으로 폭력을 해결하려고 하는것보다, 테러의 근본 원인인 빈곤, 무지 그리고 정의의 부재를 해결해야 한다.


    여성과 어린이에 대한 폭력도 매일 일어나고 있다. 어린이들은 가장 소중하면서도,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못하고 있는 우리의 보물이다. 아이들의 보호, 안전, 건강은 가장 최우선 순위가 되어야 한다. 전세계어린이들은 평화를 위해 교육 받을 권리가 있다. 어린이들의 안전, 복지를 지켜야 하며, 특히 전시에 이러한 권리들이 짓밟히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이라크 전쟁은 위험한 불안정의 온상이며 테러의 근원이 되고 있다. 핵물질의 도난 사고에 대한 믿을만한 보고들은 절대 간과되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수만명의 사람들의 희생을 애도하지만, 연합군이 세웠던 목표들은 하나도 달성되지 못했다는 것을 기억한다.


    안보, 빈곤, 환경위기의 과제들은 법치주의를 기반으로 한 다자적 노력으로만 해결 가능하다. 모든 국가들은 조약 의무들을 성실히 시행해야 하고 유엔의 중요한 역할을 재확인해야 하며, 평화 유지를 위한유엔 안보리의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북핵문제의 신속하고 평화적인 해결을 지지한다. 또한 북한은 핵무기 프로그램을 검증가능하게 포기해야 하고, 미국은 안전보장을 제공하고 경제제재를 해제해야 한다. 6자회담과 미-북 양자대화를 통해 이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우리는 최근 이란의 핵프로그램 문제에 대해 이란과 영국, 프랑, 독일이 논의한 것을 환영한다. 또한 미국이 이런 대화에 참여해 IAEA 틀 안에서 해결 방안을 모색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국가들의 군사비 감소를 촉구한다. 또한 인권과 국제법을 위협하는 무기 거래 등을 통제할 수 있는 조약이 속히 체결되기를 바란다.


    노벨상 수상자로서, 우리는 국제사회가 빈곤과 지속가능한 발전과 관련된 과제들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과제들의 해결을 위해서는, 굳은 정치적 의지가 필요하다.


    유엔 새천년회의에서 국가들이 한 약속들, 즉 개발원조, 공정한 무역, 시장 접근, 개도국을 위한 부채탕감 등은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다. 빈곤은 아직도 세계에서 가장 널리 퍼진 위험한 재앙이다. 수백만명의 사람들은 빈곤과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고, 국가들은 혼란과 절망에 빠져 있다. 이는 극단주의와 테러를 불러일으키는 토대를 마련한다. 인류의 미래와 안정은 위협받고 있다.


    과학자들은, 식수, 에너지, 기후변화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면 질서가 무너지고 더 많은 군사분쟁이 일어나고, 결과적으로 인류가 기반을 두고 있는 체제 자체가 위협 받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교토 의정서와 지구 헌장 (Earth Charter)의 지지를 재확인하고, GreenCross International의 이니셔티브에서 제시한, 권리를 바탕으로 한 식수 접근을 지지하고 국가들의 식수와 관련된 조약 협상 촉구한다.


    노벨평화상 수상자로서, 우리는 인류가 새로운 전례 없는 기회들을 잡고 직면한 위협들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더 개선된 세계 지배구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유엔과 유엔 조직들의 개혁, 강화를 지지한다.


    당면 과제로 우리는 다음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 중동 위기를 위한 진지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이는 테러 문제를 해결하고 문명간의 위험한 충돌을막을 수 있는 길이다. 지역 내 모든 국가들의 안전하고 실현 가능한 주권이 보장되고, 중동 국가들이 지역의 고유한 문화와 국민성을 유지하면서 모든 국제사회 프로세스에 통합된다면 중동문제는 해결이 가능하다.


    - 핵확산금지조약(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의 유지, 강화를 위해노력할 것이다. 우리는 이중 잣대를 반대하고, 핵보유국들의 핵무기 폐기 책임을 강조한다. 우리는 전면적 핵실험금지조약(Comprehensive Test Ban Treaty)의 발효와, 그전까지 핵실험 모라토리엄의 지속을 촉구한다. 또한 되돌릴 수 없고 검증가능한 핵무기 감축을 더 신속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새로운 사용가능한 핵무기의 개발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핵무기를전쟁 중 사용가능한 무기, 또 선제공격의 위협을 주는 정당한 도구로 인정하는 독트린들의 폐기를 촉구한다.


    - 우리는 유엔 사무총장이 2005년에 고위급 회담을 열도록 지원하고, 새천년 개발 계획의 이행을 촉구하는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우리는 큰 중요성을 가진 이 새천년 개발 계획들의 이행을 위해 국민적여론이 형성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약속한다.


    우리는 오늘날 세계가 맞은 도전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이 권리를 지닌 시민사회와 대중과 함께 상호 협력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는 폭력을 거부하고 윤리적, 문화적, 정치적 다양성을 존중하며 정의, 동정심, 인류 통합을 강조하는 진정한 세계화를 이룩할 수 있는 길이다.


    노벨평화상 수상자 개인과 기관들은 이러한 목표들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하며, 모든 정부와 모든 사람들의 동참을 촉구한다.



    아웅산 수지 여사 관련 선언문


    로마에서 제5차 노벨평화상수상자 정상회의에 참석한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은 우리의 좋은 동료인 아웅산수지 여사가 올해도 이 회의에서 참석하지 못한 것에 큰 우려를 표명한다. 비폭력과 민주주의의 산증인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해서는 안된다. 이는 전세계에 손실이다.


    우리는 아웅산 수지 여사와 지지자들의 인권, 정치적 권리 등을 전면적으로 즉각 회복시키기를 미얀마정부에 촉구한다. 정의가 이를 요구하고 있다.



    미하일 고르바쵸프, 김대중, 바웬사, 롯블라트, 호세 라모스 호르타, 베티 윌리엄스 등 노벨평화상수상자